Culture and history info
콜럼버스 이전 시대
이 지역은 기원전 2만 년경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으며, 선고전기 중기인 기원전 1300년경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올멕 문명이 발흥했다. 올멕 문명은 그들의 지배자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알려진 흑인 인종의 특징을 가진 거대한 석상 두상으로 알려져 있다.
선고전 시대의 말기에 멕시코 중앙 고원 텍스코코 호수 남쪽에 원형의 대형 피라미드로 알려진 쿠이쿠일코(Cuicuilco) 동쪽으로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그 후에도 후기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과 같은 여러 고급 원주민 문명의 거점으로 번영하였다.
아즈텍 제국
14세기 후반, 텍스코코 서쪽에 있던 테파넥 족 국가의 아스카포찰코(Azcapotzalco)에 테조조목이라는 지도자가 등장하였다. 그가 이끌던 용병부대였던 아즈텍은 테조조목 사후, 15세기 초반에 텍스코코, 틀라코판과 함께 아즈텍 삼국 동맹을 맺었고, 텍스코코의 이름난 군주였던 네살왈코요틀의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지도력을 갖추고 주변국을 정복하여 아즈텍 호수 위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아즈텍 제국을 형성하였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달 이후, 16세기 초 1519년에 스페인에서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상륙했다. 코르테스가 이끄는 정복자들은 아즈텍의 내분과 전승 신화를 유리하게 이용하여 전투를 벌인 끝에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고, 1521년에 황제 쿠아우테목을 처형하고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후 스페인은 이 땅에 누에바 에스파냐(새로운 스페인)이라는 부왕령을 창설했다. 페루 부왕령과 함께 인디아스 식민지의 중심으로 멸망된 테노치티틀란의 위에 멕시코시티가 건설되었다. 이후 약 3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스페인어와 가톨릭교가 보급되고, 인디오와 스페인인 사이에 혼혈이 진행됐으며, 스페인 기원의 봉건적 대토지 소유 제도가 생겨났다.
멕시코 독립 전쟁
스페인의 지배는 300년을 이어졌으며, 18세기에 들어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의 영향을 받아 토착 크리올들 사이에 독립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 호세 1세로 즉위시켰다. 그것에 반발하는 스페인 민중 봉기를 계기로 스페인 독립 전쟁이 시작되면서, 인디아스 식민지도 가짜 왕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였다. 1809년부터 1810년까지 키토, 라파스, 산티아고, 카라카스, 보고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인디아스 각지에서 크리올료들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가운데 멕시코에서도 1810년 9월 15일 미겔 이달고 신부 등의 스페인 타도를 외치는 멕시코 독립 전쟁이 시작되면서 오랜 전쟁의 시작이 막을 올렸다.
멕시코의 크리올료는 페루의 크리올료와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의 민중 반란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독립 운동에는 소극적이었고, 이달고도, 반란을 이어받은 메스티소의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이끄는 왕당파 군에게 패했다. 그러나 모렐로스의 난이 진압된 후 1820년 경에는 남부에서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마르틴 등이 이끄는 해방군이 각지에서 해방시켰고, 인디아스에 남는 식민지는 도서 지역과 브라질을 제외하면 페루, 중미, 멕시코 만 밖에 없었다.
스페인 본국에서 자유파가 정권을 잡으면서(리에고 혁명), 1821년 9월 15일에 보수파 크리올료를 대표하는 독립 지도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멕시코시티에 입성하였고, 반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투르비데가 멕시코 왕으로 추대하고 싶었던 반대파 전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는 멕시코 입국을 거절하였고, 자신이 황제에 즉위하는 형태로 제1차 멕시코 제국이 건국되었고, 중앙아메리카를 병합했다.
잇따른 대외 전쟁
멕시코-미국 전쟁을 통해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에 달하는 캘리포니아를 미국에 빼앗겼다
독립 이후 혼란은 계속되었고, 1823년에는 황제가 퇴위하고 제국이 붕괴하면서 멕시코 연방 공화국(19세기)이 되었고, 이때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 독립했다. 독립 후 내전에 의한 농업 생산력의 저하, 광산의 생산력 저하, 카우디요 등의 군웅 할거로 유통의 혼란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였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대가 이어졌다. 1835년 10월 23일부터 1846년 8월 22일까지는 중앙 집권 국가인 멕시코 공화국이 있었다.
또한 코아우일라이테하스 주에 미국 이주민의 정착을 인정하였고, 1835년에는 앵글로 색슨 계 이주민이 반란을 일으켜 1836년에 멕시코령 테하스는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을 했다. 그 후, 미국이 1845년 텍사스를 합병하자, 1846년에는 텍사스를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미국 전쟁이 발발한다. 그러나 멕시코는 멕시코시티를 점령당하고, 1848년에 패배하면서 텍사스를 매각하고 뉴멕시코 주·캘리포니아 주 등의 땅을 미국에게 팔았다. 결국 멕시코는 리오브라보 강 이북의 영토 (이른바 멕시코 할양지)를 상실했다.
영토 상실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은 깊어졌지만, 1861년 미국의 남북 전쟁 발발과 함께 프랑스 제2제국의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 출병을 시작했다. 1863년에는 멕시코시티를 함락당하고, 프랑스의 괴뢰 정권인 멕시코 제2제국이 건국되는 상황이 되었다. 인디오 출신이었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군에 맞서 1866년에 주권을 회복했지만, 이것은 두고두고 미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후아레즈는 자유주의자로 레포르마 (개혁)을 추진했지만, 1872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후아레즈의 뒤를 이은 테하다 대통령은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지만, 지도력의 부족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디아스의 독재와 멕시코 혁명
이 틈을 타서, 1876년 프랑스 개입 전쟁의 영웅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취임했다. 디아스는 30년 이상에 걸친 강압적인 독재를 펼쳤으며, 외자를 도입하고 경제를 확장시켰지만, 비민주적인 정권 운영으로 국내 각지에 소요를 유발했다.
1907년 공황의 영향이 멕시코에 미치자 각처에서 노동쟁의가 발발하였고, 1910년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디아스가 상대 후보인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체포 감금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멕시코 혁명’이 시작되었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베누스티아노 카란, 알바로 오브레곤 등이 이끈 혁명군은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부군을 물리치고 1917년에 혁명 헌법을 반포하면서 혁명은 끝이 났다. 혁명은 끝났지만, 지도자들 간의 노선 대립으로 잠시동안 정치적 불안 상태가 이어졌다.
PRI 일당 독재
1929년에는 국내의 다양한 혁명 세력을 하나로 묶어 국민혁명당(PNR)이 결성되어 71년간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다. 1934년에 성립된 라자로 카르데나스 정부는 유전 국유화 사업이나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국내의 경제 구조는 안정되었다. 이후 당명을 제도혁명당(PRI)으로 바꾸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사이에 두고 일당 독재 하에 국가의 개발을 진행했다. PRI는 국내에서는 일당 독재를 추진하고, 미국과 서방의 자본에 의해 경제를 확대했지만, 다른 한편 외교적인 면에서는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과의 관계도 밀접하게 가져갔으며, 정책이 모순된 체제면서도 냉전이 종결된 20세기 말까지 여당으로서 정치를 지배했다.
또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석유와 실버의 생산과 수출이 큰 부를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진행된 근대산업화 과정에서 막대한 대외 부채를 안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일부 부유층에 집중된 부의 불균형, 그리고 자원 가격 폭락에 따른 경제 위기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괴롭히는 결과가 되었다.
EZLN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의 마르코스 부사령관(가운데). NAFTA의 발효일에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 마야계 인디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을 요구하며 반자본주의 기치를 내걸고 자치 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최남단 과테말라 국경 지대의 치아파스 주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1994년 1월 1일 무장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에 의한 통치가 이어져 사실상 해방구가 되었다. 1994년에 발효된 NAFTA는 미국, 캐나다와의 무역을 확대하는 한편 빈부격차를 일시적으로 확대하고 전통적인 공동체에 사는 인디오의 공유지를 해체하고, 미국산 옥수수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같은 해 1월 1일에 마르코스 부사령관 등이 이끄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가난한 주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했다. 사파티스타는 전투를 끼운 후 치아파스 주를 해방구로 선포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최대적 존재로서 내외의 지원을 받아 현재도 정부군과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그 후 2000년에 PRI는 만연한 부패와 침체된 경제 실책에 대한 책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봉기 등의 책임을 지고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국민행동당을 이겨서 71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현재도 강력한 정당으로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현재에 이른다.
멕시코 마약전쟁
55대 비센테 폭스 대통령
2000년대, 특히 2005년 이후 마약 카르텔의 항쟁에 의해 치안이 악화된다. 전 정권인 칼데론 정부는 마약 카르텔과 유착한 경찰 간부와 주지사 조차도 체포하겠다는 강경 자세로 군을 이끌었고, 마약 범죄 조직을 단속했다. 이에 따라 카르텔의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하였고, 2010년에는 매년 1만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사태가 되었다 (멕시코 마약 전쟁).
한편, 원유가의 상승이나 NAFTA 체결 후 수출 물량 증가, 또한 내수 확대에 의해 중산층이 증가하고 넥스트 일레븐의 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경제 정책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라 휘발유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하여 국민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2009년에 들어 와서는 캐나다와 미국과 함께 신종플루(H1N1)의 발상지가 되었다.
2010년 7월 4일, 전국 32개 주 중 14개 주에서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다. 2000년까지 집권당이었던 야당 제도혁명당(PRI)이 압승(지사 선거가 실시된 12개 주 중 10개 주에서 당선)을 했다.
PRI 정권의 재등장
2012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제도혁명당(PRI)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임기 : 2012년 12월 1일 - 2018년 11월 30일)가 선출되어 대통령에 취임했다.